VOL.258 SPRING 2021

#안목의 고취

향을 듣다 聞 香

 

옛 문인들은 차, 향, 서화, 꽃을 문인사예라 칭하고 항상 곁에 두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찾았다.
이 중에서 향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가까운 벗이기도 했다. 그들은 묘시(卯時) 첫 새벽에 일어나면
향을 피우고 차를 달이며 그 향기에 세상의 온갖 번뇌를 제거하고 심신을 정결하게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향도(香道)’라는 말이 생긴 이유도 이런 연유이다. ‘좋은 냄새를 가진 기운(香氣)을 받아 마음을 닦는다’는
향도는 코를 통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관찰하는 궁극의 수련법이다.
서상우(칼럼니스트)
사진 일상사치

철학과 결합되어 수행의 개념으로
진화한 향도(香道)

향은 피운다는 표현보다는 ‘듣는다’라고 한다. 향도에서는 향이 내게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호흡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향기가 울컥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것을 ‘듣는다(聞香)’고 표현한다. 소리가 나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향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그것을 느껴야 진정 향을 즐기는 수준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송나라 문인들이 말한 ‘사반한사(四般閒事)’란 향을 사르고 꽃을 꽂고 그림을 감상하는 우아하고 풍류 가득한 삶을 일컫는다. 여기서 ‘한(閒)’은 ‘한가하다’, ‘여유롭다’는 뜻이다. 경제력·시간·마음에 모두 여유가 있어야 비로소 즐길 수 있다는 호사이다. 이처럼 향도는 누구에게나 열린 길이나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인류가 향을 사용한 것은 수천 년 전부터다. 제사를 지내거나 종교에 쓰이거나 질병을 치료하는 용도였다. 이것이 서양에서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그리스 로마의 향 치료가 아로마테라피로 발전했고, 십자군 원정 이후 아랍의 냉각장치를 통한 증류법이 유럽에 전해지면서 현대적인 향수가 만들어졌다. 반면 동양에서는 철학과 결합되어 수행의 개념으로 진화되었다. 향을 빌어 참선하는 최초의 기록은 <능엄경>의 ‘향엄원통편’에 나온다. 향엄동자가 향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이 향기를 관찰하니
본래 있는 것도 아니며
본래 없는 것도 아니며,
연기 중에 있는 것도 아니며
불 중에 있는 것도 아니며,
갈 때는 집착하지 않으며 올 때는
어디서 오는지 헤아리지 않으니
심경이 사라지고 번뇌가 없어지니
이로써 아라한의 성과를 얻었다.

향도는 호흡으로 이루는 최상의 예술이다. 호흡에 향을 싣고 내쉬면 다른 사람과 주변을 기분 좋게 하고, 들이키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 이처럼 나를 살리고 세상을 향기롭게 만드는 것이 향도의 핵심이다.

향의 종류

<규합총서>에는 향을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가정살림에 관한 내용을 집대성한 책이라는 점에서 당시 부인들이 일상적으로 향을 만들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향은 우선 그 쓰임에 따라 나눌 수 있다. 몸에 바르는 향은 ‘도향(塗香’)이라 하는데 향수, 향유, 향약 등이 있다. 태워서 그 연기를 쐬는 것을 ‘소향(燒香)’ 또는 ‘훈향(燻香’)이라 하고 이는 환향(丸香), 말향(末香), 연향(練香), 선향(線香)으로 나뉜다.
훈향은 만들고 피우는 방법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편향(片香)은 나무를 어슷하게 깎아 토막을 낸 것으로 토막향이라 불리기도 한다. 향완이나 전기 향로를 이용해 그 향을 느낄 수 있으며 연기가 덜하고 은은한 향이 특징이다. 분향(粉香)은 가루 향을 이른다. 다양한 문양을 가진 향틀에 가루 향을 다져 넣고 떡처럼 찍어내어 피운다. 선향(線香)은 우리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막대 모양의 향이다. 가루 향을 느릅나무 껍질이나 녹나무 가루와 같은 식물성 접착제와 반죽하여 국수처럼 길게 뽑아 만든다. 반듯하게 세워서, 또는 비스듬히 꽂아 피운다. 탑향(塔香)은 가루 향을 반죽해 작은 원뿔모양으로 만든다. 향불이 잘 꺼지지 않아 야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 편리하다.
인간의 후각은 참으로 특별해서 향기로 기분이 바뀌고 때론 아스라한 기억이 소환되기도 한다. 인류가 그렇게 일찍 향을 발견하고 매혹되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른 새벽 묵직한 숲의 향기가 피어오르는 향을 가만히 바라보자.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사그라들며 조용히 자신 속으로 침잠하는, 돈으로는 누릴 수 없는 호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후각은 참으로 특별해서
향기로 기분이 바뀌고
때론 아스라한 기억이 소환되기도 한다.
인류가 그렇게 일찍 향을 발견하고
매혹되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향을 마주하면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사그라들며 조용히 자신 속으로 침잠하는,
돈으로는 누릴 수 없는
호사를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이 향도이다.

일상 속 향도를
즐길 수 있는 아이템

훈옥당

분로쿠3년(文禄)인 1594년 부터 교토의 향취를 담아온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향 브랜드이다. 교토의 니시혼간지(西本願寺)에 향을 제공하면서 시작된 이 브랜드는 오랜 전통에서 축적된 천연 향료에 현대적 조향기술을 접목하여 오늘에 어울리는 콘셉트를 제안하고 있다. 국내 향 마니아들이 첫 손에 꼽는 브랜드로 계절과 습도까지 철저하게 계산하여 제품을 제작한다. 시그니처 제품인 ‘사카이마치(境町)101’은 훈옥당의 주소로 500년을 넘게 한 자리에서 향을 만들면서 가게에 배인 향을 제품화한 것이다.

다면향꽂이

향을 피울 때 올라오는 연기의 선을 시각적으로 그려낸 정지원 작가의 향꽂이 시리즈이다. 모든 제품을 작가가 일일이 물레작업으로 성형한 후 손으로 면을 깎아 완성한다. 캐스팅 작업으로 완성된 세라믹 제품은 따라올 수 없는 정성과 작가의 혼을 느낄 수 있다.

밤부리프 Bamboo Leaf

일본의 주물 브랜드 노사쿠(能作)의 대표적인 인센스 홀더로 국내 향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높다. 대나무 잎을 모티프로 주석과 황동으로 제작되었다. 변하지 않는 주석의 아름다움과 시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산화되어 색조가 변하는 황동의 조화가 훌륭하다.

리버스 인센스 홀더

한국 디자이너 이건민 작가의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인기가 높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거꾸로 피어오르는 은은한 향의 플로우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생각의 전환을 통해 인센스를 거꾸로 고정하여 재가 바닥에 수직으로 떨어지게 하였다.

발행인이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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